[Springboard London] 환승하기 위해서는 지금 타고 있는 열차에서 내려야 한다.

본 블로그는 런던에서 Springboard 라는 Seed Acceleration Program에 참여하고 있는 Simon, Jin, Dan 3인의 이야기입니다. 

 
환승하기 위해서는 지금 타고 있는 열차에서 내려야 한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버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느냐이다. Simon (대원외고, 고려대) Dan(연대) Jin (포항공대) 열심히 학창시절 공부하여 매년 신문에 나오는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 1위에 다니며 남부럽지 않은 연봉과 복지혜택을 누리고 지낸 우리는 당장 이런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사람들과 너무 좋은 환경에서 일했기에 이들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아픔이었다.
 
신혼인 Dan과 Jin의 경우(둘다 결혼한지 100일도 안된 신혼이다) 한 가정의 가장인 상태에서 이러한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최종 합격부터 출국일까지 3주밖에 남지 않은 것도 모든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을 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선택일지 모른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는 꿈을 쫓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나의 꿈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였고 나이가 들면서 사회에 적응하거나 나의 모습에 적응하는 것을 경계했었다. 나의 모든 프로필과 인터넷 상의 자기 설명에는 “꿈을 잃었으면 나가 죽어” 라는 글을 써놨고 이 자기 소개는 나에게 하는 멘트였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하다. 이번 기회 역시 나에게는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도전이었다. 하지만 선택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한두살 어렸을때 차라리 쉽게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어느 새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고 내 스스로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에 어깨가 무거웠다.
 
막상 3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고민하느라 시간을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찾아야 했고 준비해야할 서류도 많았다. 런던에서는 법적 절차와 거주 문제로 계속 이메일이 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 한번도 바꾸지 않은 나의 카카오톡 멘트 ]
 
 
일단 저지르고 보자
그동안 Social Translation 쪽에 대한 컨셉을 계속 진행하면서 이 컨셉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사람이 필요했다. 당시 Jin과 Dan이랑 가끔씩 주말에 모여 서비스를 실제 웹에 올려 시각화 시켜보았고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 지 또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곤 했었다. 다들 회사 업무가 바빴지만 하나의 자기 개발이라는 생각으로 주말이나 새벽시간을 쪼개 조금씩 공부를 했었는데 나에게는 이들과 같이 진행하는게 가장 좋은 Option 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Jin은 5월에 Dan은 6월에 결혼하여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나야 부인은 커녕 여자친구도 없으니 그만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적었지만 이들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개발자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Jin과 Dan에게 출신 학교 게시판에 개발자 공고를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급박했던 시기에 가장 중요한 개발자 건이 갑자기 해결되었다.
개발자로써 개발을 하며 안정보단 도전적으로 살았던 이들은 내가 개발자 공고를 부탁한 그 날,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한 후
그 다음날 하던 일을 내려놓고 같이 영국행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동안 같이 고민했던 개발자들이 함께 한다는 생각에 너무 행복했지만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평화로운 가정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심하게 미안하였다.

[Springboard London] The Beginning

본 블로그는 런던에서 Springboard 라는 Seed Acceleration Program에 참여하고 있는 Simon, Jin, Dan 3인의 이야기입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
 
2012년 8월 12일. 이메일 한통이 런던에서 날아왔다
 
“We have great news – we would love you to participate in Springboard…… “
7월 28일, 서류 통과 결과를 받고 그 후부터 시작된 1차, 2차 면접 후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다. 
 
유럽의 Seed Accelerator 인 Springboard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2007~8년 Social Translation이라는 주제에 꽂혀 벤처를 창업하고 이후 국내 IT 대기업에 입사하여 해당 주제로 사내 프로젝트로 작업을 하다 프로그램이 사라진 2011년 이후, 프로젝트를 도와주던 사람들도 떠나고 혼자 조금은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저 시간이 날때 이런 저런 Ideation을 PPT로 만들어 주변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다니거나 주말에 몇몇 개발자들과 모여 서비스에 대한 컨셉을 잡고 테스트 서버를 만들어 하나씩 테스트 해보는 게 다였다. 
 
아이러니 하게 프로젝트 이후 대기업 내에서는 내가 맡은 업무는 벤처 투자였다. 미국, 이스라엘, 동남아, 한국등을 돌아다니며 Start-up 관련자들을 매일 만났고 나도 한때는 저들과 같이 한편으로는 무모하고 또 한편으로는 첫사랑을 만난 듯 두근거리는 꿈을 꾸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으로 만족하며 지내던 날들이 계속 되었다. 
 
당시 하루 일과는 IT게시판에 들어가 신생벤처와 유망 서비스 기사를 읽고 해당 서비스를 사용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들면 직접 연락하여 만나곤 했는데 그 때 들어간 게시판에서 Springboard 관련 공고를 보게 되었다. 
 
사실 지원할 당시 두가지가 궁금했다. 나는 투자자로서의 자질이 있는가? 와 내가 예전부터 진행한 Social Translation이라는 Idea는 유효한가? 였다. 투자자가 꼭 Start up 경험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Fast Track Asia의 노정석 대표나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Vinod Khosla처럼 성공적인 창업 이후 VC로 명성을 잇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Kcube의 임지훈 대표나 Stonebridge의 박지웅 대표처럼 창업 없이도 Insight를 인정 받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고민해오던 Item이 있었기에 스스로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 당시 보았던 스프링보드 모집 공고 ]
 
모든 면접은 런던에서 진행되었다. 한국에서 회사 업무를 하며 지내고 있었기에 나에게는 영국을 갈 수 있는 시간이나 여유가 없었다. 주말에 간신히 스카이프를 통하여 이루어진 화상 면접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접속은 자꾸 끊기고 서로의 목소리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마치 독백이나 하듯 예전부터 고민해오던 Social Translation의 방향을 중얼거리는 것 뿐이었다.
구글, 페이스북 등 유명 IT 기업의 임원들에게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어떤 주제를 갖고 오래 고민하고 주변 사람들과 토론하다면 여러 질문들을 받게 되지만 그런 질문들은 다 비슷비슷하다. 그래서 그러한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꽤 탄탄하게 준비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는…?
 
아시아 지역에서 딱 한팀이 선발되었다. 바로 우리었다. 
(영국 5팀, 영국외 유럽팀 2팀, 미국 2팀, 한국 1팀)